명으로 책임지지 말고

행동으로 책임져라

 

6월 30일 보도본부장이 국주간단을 불러 놓고 회의를 진행한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적폐' 고대영으로부터 순천방송국장 발령을 받으면서 열심히 하겠다는 결의를 내비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바뀌고 나서 갑자기 스스로 보직을 그만두고, 그에 따른 인사를 마치 엄청난 차별이라도 되는 듯 희생자 코스프레를 떨던 그 보도본부장 말이다. 

회의 내용으로 전해진 몇 문장을 인용해보자.

 

"조선일보 오늘자 장문의 사과문 게재. 특징은 자세한 경위 설명 및 대책." "언론사의 오보나 사고에 대한 설명 책임이 중요시됨. 우리도 이를 제도할 필요 있음" "이제 과거와 같이 해당 직원과 부장의 경위서/시말서 받던 차원이 아니라 잘못에 대한 충분한 설명 프로세스를 갖추어야 될 상황이 됨"

 

파업전사라는 지적을 받는 최선욱의 강의로 KBS에서 유명해진 "설명책임"이라는 말은 영어의 accountability를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본부장과 국주간단은 이 용어를 쓰면서 자신들의 지식을 자랑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식을 드러내고 말았다. 양승동아리의 본부장 정도 되는 인물이 accountability를 단순히 설명을 잘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수준이라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그 집단의 수준까지 드러낸다.

 

본부장을 위해 설명을 해주자면, '설명책임'으로 번영되는 accountability responsibility와의 관계를 통해 이해가 가능하다. responsibility는 어떤 행위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그 일을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우리말의 '책임'과 대응한다. accountability는 어떤 행위나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주로 안 좋은 결과나 행위에 관해) 그 일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한다는 개념으로 역시 우리말의 '책임'과 대응한다.

 

즉 사람과 일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가 다를 뿐, 결국 '책임'을 말하는 것은 같다. Accountability 1) 책임을 져야 하는 권능을 가진 자가, 2) 책임을 인정하고, 3) 행위의 무게에 맞는 책임지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선욱이나 일부 교수들이 accountability '설명책임'으로 어색하게 번역했다고 accountability '설명할 책임'으로 변신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일 뿐이다.

 

본부장이 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주장이 황당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황당함을 이해하려면 지금까지 보도본부에서 발생한 많은 참사에 대해 도대체 책임질 권능을 가진 자가 어떤 책임을 졌는지를 보면 된다.

 

 집권권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총장의 경우

 

집권여당 권력이 그를 무리하게 찍어내려고 할 때, 있지도 않은 소설을 써가면서 검찰총장을 물어뜯었던 주구저널리즘 사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정치적 공작의 냄새가 농후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근거로 야당후보를 물어뜯었던 오세훈 생떼탕 참사. 보도본부가 자행한 만행은 두 손과 발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 정도로 많지만 이 두 이슈만 보더라도 도대체 누가 적절한 책임을 졌는지 알 수 없다. 그야말로 직원이나 부장이 시말서/경위서나 경미한 징계를 받은 것 외에 정작 9시 뉴스의 편집방향을 결정한 자들이나, 또 그런 편집권한을 가진 자를 임명한 자들은 도대체 무슨 책임을 졌나?

 

시말서나 경위서 쓴 그 부장과 직원이 <뉴스9> 의 아이템을 결정하기라도 하나? 오세훈 생태탕 정도의 위력을 가진 아이템이 그저 부장과 직원의 판단만으로 취재 제작이 됐다고 믿을 수 있나? 윤석열 물어뜯기 주구저널리즘이 단순히 당직국장만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accountability의 정신에 부합하나? 그리고 만에 하나 정말 보도본부장과 국장은 아무것도 몰랐는데 당직국장이 혼자 그 결정을 내린 것이라면, 그 당직국장에 대한 징계수위는 충분히 accountability에 부합하나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할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지휘한 자가 책임져야 한다. 주구저널리즘 참사, 오세훈 생태탕 참사에 대해 도대체 어떤 책임 있는 자가 실질적인 책임을 진 적이 있었나? 오히려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자는 부산총국장으로 영전하지 않았나? 본부장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놓고 이제 와서 설명책임 운운하는 모습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그 두 참사 이외에도 더 있다는 게 문제다.

 

주구저널리즘과 더불어 양승동 KBS 보도본부의 상징으로 굳어진 너절리즘의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당장 얼마 전 KBS가 보도한 '이대남 이대녀' 보고서도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소롭고 황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쩌면 이 보도야말로 보도본부장이 주장한 '충분히 설명할 책임'이 필요한 건일지도 모른다. 많은 학자들이 소득계층이 다름에 따라 '나누지 않으려는 성향'이 직선의 분포를 그리면서 낮아지는 그래프가 어떤 데이터에 의해 산출됐는지 문제를 제기하자 보도본부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마지못해 원 데이터를 공개했다.

 

그러면서도 연구자의 입을 빌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법이라는 등의 비겁한 변명만 늘어놨다. 대학교에서 기초 통계학 수업을 듣거나 간단한 논문만 써도 배우는 회귀분석이 무슨 그리 대단한 기법인 것처럼 둘러대는 모습은 졸렬하다.

 

응답자 자신이 주관적으로 소득계층을 판단하고 일부 구간은 아예 표본이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로, 그것도 정치적 함의와 악용/오용의 사례가 발생할 수 있는 연구 결과로 현 정권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대남에 대해 근거없는 낙인을 찍는 효과는 확실히 발생했다.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갈라치기하는 정권의 천박한 정치공작과는 놀랍도록 닮아있다. 공교롭게도 정권을 위해 그토록 발가벗고 봉사해온 KBS 보도본부가 의도적으로 그런 보도를 한 것인지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본부장이 이해하지 못하는 제대로 된 accountability는 커녕,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accountability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의도적이거나 무능의 결과이거나 부역질만 계속하는 마당에 무슨 낯짝으로 직원들에게 훈계질이나 하고 있나?

 

30일 본부장 회의 내용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우리는 김종명 보도본부장 휘하의 보도본부가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얼마나 발가벗고 정권의 편에 섰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정치진영의 사활이 걸린 대선에서는 재보궐 선거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KBS 보도본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한다.

 

어차피 언론인으로서의 자존감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니 정권에 봉사해서 한 몫이라도 챙겨보겠다는 심산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 경고해둔다. <뉴스9> 등 주요 프로그램 뿐 아니라 라디오, 디지털의 구석구석까지 찾아가면서 김종명 보도본부의 모든 정권 부역행위가 기록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두기 바란다.

 

 

2021 71

 

Posted by KBS 노동조합 KBS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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