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센터와 감사실의 이전투구

가장 큰 원칙? 

피해자의 입장이 관철돼야 한다

 

올 초 회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다. 유부남 PD가 언론계 지망생에게 대쉬해서 자신이 유부남임을 숨기고 한 달 간 교제했다는 사실을 한 여성이 트위터를 통해 폭로한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양승동아리가 매우 아끼는 파업전사이자, 대외적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잘 나가는 피디였다. 당시 여러가지 의문이 제기됐었는데, 왜 지난해 피해자가 <KBS성평등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했을 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이 된 바 있다.

 

이 사건을 두고 요즘 감사실과 성평등센터가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양이다. 감사실이 성평등센터에 해당 피해자의 상담일지 제출을 요구했는데, 성평등센터가 원본 제출을 거부하자 감사실이 성평등센터의 부장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는 것이다.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내용을 보면 이슈가 간단하지 않다. 우선 비밀을 전제로 상담을 했기 때문에 원본을 제출할 수 없다는 성평등센터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또한 과거 피해자가 성평등센터에 상담을 했는데도 이 사안에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아 지난 1월 피해자의 폭로가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회사의 명예와 신뢰도에 심각한 손상을 끼친 사건에 대해 감사실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 역시 당연해 보인다. 그 두 관점이 충돌하면서 <감사의 독립성> <성폭력 상담 업무의 특수성>이 대립하는 상황으로 이슈가 확대되고 있다.

 

이 이슈를 정의롭게 처리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원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어 보인다.

 

 (비밀보장) 성폭력 관련 상담 자료는 비밀이다.

 

 (객관적 조사) 성폭력 상담 기관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거나,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일을 처리했다는 의심이 들 경우 성폭력 상담 기관의 업무나 상담 내용은 자체 인력이 아닌 제3의 기관이 객관적인 관점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 우선주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안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다 중요한 원칙들이다. 그런데 이 원칙들 간에 상호 충돌이 발생할 경우 어느 원칙이 더 우선권을 갖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봐도 명백한 답은 하나 있다.

 

바로  피해자 우선주의의 원칙이 그 모든 것에 대해 우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사실> <성평등센터>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견을 듣는 것이다.

 

 만약 피해자가 이 사건의 객관적 해결보다 성평등센터와 상담한 내용의 비밀이 유지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비밀보장의 원칙이  객관적 조사의 원칙보다 우선한다. 따라서 감사실의 요구는 무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만약 피해자가 성평등센터를 믿을 수 없어 제3의 기관이 객관적으로 판단해주기를 원한다면  비밀보장의 원칙보다  객관적 조사의 원칙이 우선권을 갖는다.

 

 그리고 만약 피해자가 연락이 되지 않거나, 피해자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비밀보장 <  객관적 조사 <  피해자 우선주의의 순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

 

 비밀보장 <  객관적 조사 <  피해자 우선주의의 순서가 돼야 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올 초 이 사건을 폭로하면서 실명으로 모든 내용을 기록에 남겼지만, 공식적인 문제제기·조사요청은 하지 않았다 상담 과정에서 합당한 징계가 내려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성평등센터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피해자가 확신을 갖기 어렵다고 느꼈고, 피해자가 합당한 조치를 관철할 수 없었을까?

 

피해자의 입장을 보면 성평등센터가 최초 피해자가 손을 내밀었을 때 적절하게 그 사건을 처리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며, 당연히 감사실은 성평등센터가 적절하게 업무를 처리했는지 판단할 필요성이 생긴다.

 

상담기록이 비밀이라는 논리만으로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면, 성평등센터는 누구도 그 조직이 적절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가를 판단할 방법이 없는 일종의 성역이 돼버린다.

 

우리가  비밀보장의 원칙보다  객관적 조사의 원칙이 더 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미 우리가 몇 차례 지적한대로 양승동 경영진은 강규형을 불법적으로 몰아내고 KBS의 경영권을 탈취한 이후 유달리 성범죄에 대해 관대한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본부노조의 파업 유공자들이라면 그 어떤 행위를 하든 상관없이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지 않은가?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에 동료 여직원을 부른다든지, 날씨가 서늘한 해외지국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양승동 사장은 그들을 선처하고, 심지어 재심에서 해임이 난 경우에도 극히 이례적으로 3심을 요구해 그를 구제해주는 정성을 보여줬다.

 

성평등센터와 감사실이 이전투구식 싸움을 벌이는 이번 사건 역시 연루된 직원이 파업전사라는 점에서 많은 직원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에 동료 여직원을 부른 사건, 해외 지국에서 발생한 사건 등에 대해 성평등센터가 적절한 목소리를 냈다면 그런 관대한 처분이 나올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와중에, 또 다른 파업전사가 연루된 성 관련 사건에 대해, 그것도 이미 피해자가 성평등센터에 대해 불신을 드러낸 입장을 공개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성평등센터가 조사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미 밝혔듯, 비밀을 전제로 한 상담일지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하거나 동의할 경우에는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자료가 제출돼야 한다고 본다.

 

누구도 성역일 수는 없다.

 

인권위나 여성단체를 불러들이거나, 감사의 독립성만 부르짖으면서 변죽을 울릴 필요는 없다.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처리하라.

 

 

 

2021 5 3

Posted by KBS 노동조합 KBS 노동조합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