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
그래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돌아볼 줄 알아야

 

인간은 태초부터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사람 人(인)자가 보여주듯 “서로 싸우지 말고 기대고 의지하며 잘 살아라.”는 것이 조물주의 섭리인 듯하다. 인간 한 명, 한 명이 다 이러한데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나 사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조직이나 인간들의 집합체인 사회가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나름의 불문율이나 원칙을 자연스럽게 만들게 됐다.

 

그래서 이게 톱니바퀴마냥 잘 맞아 돌아가면 그 조직이나 그 사회는 균형을 이루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 수만 년 인류의 경험일 것이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들을 그래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이를 존중하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야만의 정글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➀ 언론자유


누구든지 자신의 정치적 의사나 견해, 주장을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인권 원리의 핵심이다. 누구든지 대자보를 붙일 수 있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도 다른 주장의 대자보를 붙일 수 있는 권리다. 인류는 이를 통해서 서로 다른 주장의 토론이나 논쟁을 통해 더 나은 문명사회를 추구해왔다.

 

언론자유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쯤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는 이역만리 미얀마 아스팔트에서 스러진 앳된 19세 소녀 ‘치알신’의 피격사망 뉴스를 들으면서 지난 40년 전 광주 민주화운동의 그 날을 데자뷰한다.

 

언론자유를 말살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하라는 선량한 국민들을 총칼과 몽둥이로 탄압한 전두환 쿠데타 세력을 한 세대가 훨씬 지난 지금도 아직까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러한 언론자유를 위한 인류의 투쟁은 지금도 인근 중국이나 러시아, 많은 중동국가나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다. 언론자유는 그만큼 인류가 포기할 수 없는 지상명제다.

 

➁ 상대방을 ‘악마화’ 하지 않을 책임


하지만 언론자유가 아무리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피하고 조심해야할 명제는 살아 있다. 언론자유의 상대방이자 서로 기대고 살아갈 운명인 다른 사람 人을 ‘악마화’하는 행위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행위는 특히 문재인 정권 들어 더욱더 노골적인 실체를 드러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자신과 우호적인 주요 인물의 오류나 허점을 지적하고 토론하는 상대방이 등장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방을 무서운 진영논리로 공격하고 그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전쟁모드로 돌입한다. 상대방의 메시지를 들어보거나 그 문제점을 살펴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公正(공정)과 正義(정의)의 전도사였던 조국 前 법무장관 사태가 벌어지자 서초동으로 쏟아져 나온 친 문재인 정부 세력의 2년 전 검찰개혁 구호를 뒤돌아보자. 군 복무 중이었던 추미애 前 법무장관 자녀의 호화휴가 사태가 터지자 이른바 친 정부 세력들이 추 前 장관에게 보인 호위무사, 결사옹위 퍼포먼스를 복기해보자.

 

양승동 KBS의 이른바 ‘보복위원회’로 불렸던 <진미위>가 소환조사한 KBS 인들을 복기해보자. 그들은 악마도 아니었고 철천지 원수도 아니었으며 현행법을 위반한 범법자들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승동 <진미위>는 이들에게 어떻게 했나?

 

혹시나 그들 중 일부가 소위 ‘꼰대’였거나 ‘소통능력’이 부족했을 수는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사실상 불법기구인 <진미위>를 만들어 그들을 그렇게 괴롭힐 권리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살인자도 변호 받을 권리는 있는 것이다. 양승동 <진미위>와 이를 방조 또는 합작했다는 의혹을 받는 KBS본부노조는 “살인자도 변호 받을 권리”를 존중했나? 아니면 그들을 ‘악마화’하고 조롱하면서 조리 돌림하지는 않았는가?

 

윤지연 기자협회장의 짤막한 성명서 <KBS노동조합, 공갈장사는 접으시라> 지적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권의 주구 노릇 하는 데에 제 식구 감싸기를 할 수 없다는 여론도 강하다. 언론인의 소명을 생각하면 그런 논리로 노조를 공격하는 것은 부끄럽다. 지난해 <검언유착 오보사건>이 터졌을 때, 최근 <김 모 아나운서> 사건이 터졌을 때 KBS기자협회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가?

 

윤지연 기자협회장이 지적한대로 만약 우리의 행위가 적절하지 않다면 법정에서 그렇게 판단이 내려질 것이다. 만약 법원이 우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면 그때 우리를 비난한 목소리들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제 식구를 감싸는 조폭' 의 논리로 우리를 공격한데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양승동 체제 이후 모든 문제는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간부들은 모두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평직원들만 소송의 판으로 몰아넣은 양승동의 문제를 지적해보신 적은 있는가? 그대들도 결국 양승동 편이었나?

 

결국 상대방을 이렇게 ‘악마화’하는 순간 인류에게 남았던 결론은 무엇인가? 서로 죽이고 죽이는 야만 세계 정글의 혈투장이 반복될 뿐이다. 우리가 대체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성숙한 21세기 민주화 시대 대명천지에 살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➂ 자신의 잘못을 책임질 줄 아는 겸손함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죽게 돼 있다.”는 어느 유명한 경제철학자의 명언을 새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그래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겸허하고 관대한 자세로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발전한다.

 

그런데 인간이란 존재 자체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걸 잘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존경받지만 이걸 실패하면 바로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는 최근 KBS 김 모 아나운서의 편파왜곡방송 사태를 공론화하면서 당사자가 그 책임을 인정하고 사태를 잘 마무리할 것을 기대했다. “방송이라는 것이 한 번씩 사고를 치는 것이 제 맛”이라는 선배 세대의 농담처럼 사고는 사고대로 인정하고 그 사고를 친 개인이 책임지면 될 일 이었다.

 

그런데 김 모 아나운서 사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민주노총 산하 KBS본부노조는 <공방위>를 통해 김 모 아나운서를 옹호하고 편집기자의 책임을 따져 묻기 시작했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김종명 보도본부장 등 사측도 얼씨구 거들었다. 아마도 수신료 정국에서 다급함이 묻어났으리라 여겨진다.

 

그래도 그래선 안 될 일이었다. 사고를 친 개인의 책임은 온데 간 데 없고 조직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또 이 문제를 제기한 상대방을 ‘악마화’하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눈덩이처럼 커져 버렸다. “내부 집안 문제를 수사기관 등 밖으로 들고 가서 해결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전에 그럼 자정할 기회를 왜 스스로 발로 차버렸나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 그건 자신의 오류와 잘못을 지적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할 뿐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쟁투의 상대로만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KBS 노동조합은 선언한다.

 

➀ KBS노동조합은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지난 박근혜 탄핵사태를 거치면서 많은 조합원들이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가 조합원 천명 선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다. 조합원 숫자가 말해주듯 이는 우리의 잘못도 많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조직의 불완전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나 허점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KBS인들을 만나려하고 귀를 열어 경청하려 한다. 더 많은 KBS인에게 다가서려 한다.

 

➁ KBS노동조합은 상대방의 언론자유를 존중한다.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KBS본부노조나 협회나 외부 어떤 단체도 KBS노동조합을 비판할 수 있다. 더 많은 비판과 지적을 해주면 감사하겠다. 그래야 우리는 교만해지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만해지고 경청하지 않았을 때 많은 조합원들이 빠져나갔다는 뼈아픈 경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행스럽게 최근 많은 수의 조합원들이 KBS노동조합의 문을 다시 조심스럽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갈 것이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가보자는 심정이다. 어차피 불완전하고 부족한 인간들 아닌가? 서로 어깨를 기대며 같이 가다보면 길이 되지 않겠는가?

 

➂ KBS노동조합은 사회적인 책임을 확실하게 진다.

 

섭섭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KBS노동조합은 방송법을 위반했거나 강력범죄를 저질렀거나 중대범죄를 저지른 조합원이 있다면 그 또는 그들과는 같이 갈 수 없음을 밝힌다. ‘방송쟁이’의 밥그릇의 규범을 규정하는 방송법을 위반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강력범죄를 저질렀다면 이건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런 조합원도 싸잡아 보호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건 노동조합이 아니라 ‘마피아’ 집단이 될 것이다.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수신료 내는 국민들이 그런 KBS를 가만히 두겠는가? 자살골이다.

 

KBS노동조합은 전진한다. 언론자유를 존중한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회적책임을 다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리 길지않은 임기동안 할 수 있는 우리의 소명이자 시청자들에 대한 의무 아니겠는가?

 


 

2021년 3월 10일

Posted by KBS 노동조합 KBS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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