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가 성폭력 예방대책을
촉구하는 부조리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자행한 성폭력 범죄행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이 또 다른 성폭력 사건으로 얼룩졌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같은 당 의원을 추행한 뒤 직위 해제됐고, 며칠 전에는 신지예 前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성폭행한 같은 당 당직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사안이 워낙 중요했던지 어제(25일) 정의로운 <KBS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가 신지예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 주진우는 시작부터 성폭행 피해자인 신 대표에게 고생이 많고 응원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신 대표 본인의 피해 내용을 듣고 나서는 “굉장이 어려운 일인데요, 굉장히 무서웠을 것 같고요”"라며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피해자의 이름은 이렇게 크게 나오는데 가해자의 이름은 안 나옵니다. 또 가해자 주변에서 2차 가해가 굉장히 고통이 컸을 것 같아요”라며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하기도 했다.


주진우는 또 “어떤 분은 이게 무슨 성폭력이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자체 인식이 없는 분들이 많아요.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합니까? ”라며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확고한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출연자의 의견을 끌어내기도 했다.


우리는 진행자 주진우의 이런  발언들에 대해 100% 공감한다.  불행한 것은 주진우라는 인간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 와중에 신 대표가 “박원순 前 시장의 성폭력 사건 이후 민주당이 사건의 해결보다는 사건을 막고 2차 가해를 방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하자, 마치 그런 견해를 처음 들어보는 듯 “민주당이 그랬습니까?” 라고 묻거나, 뜬금없이 여성단체의 이름을 빌려 “국민의 힘 성 비위 사건에 대해서는 언론이 선택적으로 침묵하고 최근에 벌어진 일도 다루지 않는다”는 주장을 전하는 등 진행자가 가진 정치적 편견을 마음껏 질문에 담는 모습 때문이라면 성명을 쓰는 우리의 마음도 그리 아프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불편한 이유를 알려면 2016년 11월 27일 주진우가 김제동과 함께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했던 토크 콘서트의 한 장면을 다시 소환할 수밖에 없다. 궁금하신 분은 다음의 링크로 유튜브 화면을 보시면 된다.


https://youtu.be/p5R4GPxbyfU


여기 주진우의 발언을 최대한 들리는 대로 옮겨보겠다.


“매일 나오는데 비아그라 나오는데 어쩌자구요.. 그 다음에 마약 성분 나오고 계속해서 더 나올 거든요, 앞으로 섹스와 관련된 테이프가 나올 거예요. 그러다 좀 있다가는 마약 사건이 나올 거예요. 여러분들이 보신 사람들 중에 마약 사건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부정 입학 있었잖습니까? 이번에는 병역 비리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나서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 나옵니다. 최순실과 박근혜와 관련해서. 그리고 나서는 대규모 국방 비리가 나올 겁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1/10만 보신 겁니다”



그가 예언한 많은 비리들 중에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거의 없다는 것 정도는 넘어가도록 하겠다. 다만 전임 대통령 박근혜와 관련해서 섹스와 관련된 테이프가 나올 것이며 또 마약사건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을 하는 주진우의 모습은 어제(25일) 신지예 대표를 불러놓고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에 대해 분개하는 주진우의 모습과 너무나 이질적으로 오버랩 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정의를 따르면 <성폭력은 모든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포괄한다.> 그리고 그것이 발전된 대한민국의 성인지감수성의 기준에 부합할 것이다.


전임 대통령 박근혜가 비록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죄인이라고 해서 그가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성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 이전에 한 명의 女性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 역시 보장돼야 한다.

 

그렇다면 박근혜에 대한 주진우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만에 하나 그의 주장이 설령 사실로 드러난다 해도, 공개된 장소에서의 이 같은 발언은 한 인간에 대한 인격 살인이자, 한 명의 여성에 대한 성적 테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는 그의 주장이 입증됐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주진우의 이 발언은 어떤 측면으로 보더라도 명백한 성폭력이자 성범죄가 아니겠는가?

 

혹시 우리가 너무나 과문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헛다리를 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KBS성평등센터>에 주진우의 발언이 성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시기를 부탁하고 싶다.

 

수차례 남녀평등 방송상을 수상하고, 전임 성평등 부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주진우가 진행하는 라디오 부문을 포함해 모든 PD들을 대표하는 최지원 PD협회장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그간 유달리 성범죄에 관대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 특히 민노총 노조의 간부이거나 지난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자들에 대해 관대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양승동 사장 역시 주진우 발언에 대한 의견을 밝혀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참에 KBS의 모든 직원들에게도 묻고 싶다. 도대체 주진우의 발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대들은 주진우의 이런 발언은 용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몇 차례 이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양승동 경영진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할 것을 기대한 바 있었지만, 양승동 경영진은 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경영진이 이 문제를 회피한 결과는 한 여성의 인격을 수많은 대중 앞에서 말살한 인물이 KBS의 중요 채널에서 엄중한 태도로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호소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조리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성폭력에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이며, 공영방송 KBS가 성폭력을 조장하고 성폭력 가해자를 우대하는 사회적 범죄를 저지른다는 지적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우리는 양승동 경영진이 계속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그들이 성범죄를 방지하기는커녕, 기존에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서도 가해자를 보호하는 공범의 지위를 면치 못할 것임을 경고한다. 


아울러 KBS의 모든 제작자들 역시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선동가 앞에서는 성평등과 성폭력 방지의 가치를 한낱 장식품처럼 취급하고, 권력자 앞에서는 언제든 그 가치를 부인하고 모른 체 할 준비가 돼 있는 집단임을 고백하는 셈이 된다는 것도 지적하고자 한다.

제발 부탁한다.


눈꼽만큼 이라도 회사를 생각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이 부조리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라.

 

2021년 1월 26일

Posted by KBS 노동조합 KBS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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