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KBS노동조합 창립32주년에 드리는 글)
공영방송 위기 속 방황하는 노동자,

갈 곳은 어디인가?

 


■ 공영방송 위기 속에 탄생한 KBS노동조합

  1988년 오늘 설립된 KBS노동조합은 공영방송의 위기 속에서 설립됐다. 군사독재시절 정부의 언론통제로 KBS는 소위 땡전뉴스로 불리며 시민들에게 조롱을 받았다.
많은 시민들은 당시 수신료를 매우 아까워했다. 자장면 한 그릇에 500원, 소주 한병에 200원이었으니 수신료 2500원은 꽤 높은 금액이었다.

시민들의 문화수준은 높아져 가는데 KBS의 콘텐츠 제작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외화로 채워졌고, 상업광고 비율도 높아 시청자들의 불만은 계속됐다.

시청자들의 불만은 1982년에 폭발했다. 전라남도 농촌지역에서부터 수신료 납부거부운동이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됐다. 정치, 종교계도 가세해 KBS 뉴스 안보기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수신료는 전기세에 포함되지 않아 KBS 직원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직접 징수했다.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이 퍼지니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공영방송의 위기는 결국 1988년 절정을 맞았다. 당시 KBS 수신료 징수액이 790억원으로 당시 최고점을 기록했던 1984년의 1255억원보다 465억원이나 줄어들고 징수율도 44.3%에 그친 것이다.

회사에 큰 타격을 줬던 수신료 거부운동은 KBS 노동자의 자성을 불러일으켰고 1988년 4월 28일 사내 9개 사원협회 회장단은 KBS 노조 설립에 뜻을 같이했으며 그해 5월 20일 오전 9시 본관 휴게실에서 각 사원협회별 10명씩 총 90명이 발기인대회를 거쳐 KBS 노동조합의 탄생을 확정했다.

 

 

■ 노조 창립 32년 만에 노동자 최대 위기 봉착
당시 고희일 초대 KBS노동조합 위원장도 노보 창간호를 내면서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확인된 KBS 오욕의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조합이 일어섰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욕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으로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양승동 사장의 무능경영이 공영방송 위기를 심화시켰다. KBS 역사상 전례가 없는 적자행진이 계속되고 있지만 경영진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재난 방송 늑장 대응은 물론 편향된 보도행태로 시청자들의 실망과 거부반응을 스스로 불러오는 가하면  현직 부사장이 갑자기 사표를 쓰고나가 민주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이 돼 공영방송의 신뢰성과 명예에 치명타를 가했다.

더욱이 가만히 있는 7개 지역국 구조조정을 강행해 지역 시민의 조직적인 반발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공영방송 위기를 촉발한 것이다.
무능 경영진을 교체하고 새로운 생존활로를 모색해도 모자를 판에 어용노조로 전락한 본부노조는 사측의 이런 실책에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대신 KBS노동조합이 이뤄낸 임금과 복지 향상의 상당 부분을 사측에 양보하면서 KBS 노동자 운신의 폭이 크게 줄어들었다.

자신감(?)을 얻은 경영진은 연차촉진 확대에 이어 순환 무급휴직과 슬림화된 디지털 조직 등을 언급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의 의지를 내비쳤는데 결국 노동자 생명의 핵심인 고용관계까지 위협당하는 꼴이 된 것이다. 32년동안 이렇게까지 공영방송이 위기를 맞이한 적은 없었으면 KBS 노동자 역시 맥없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다.

 

 

■ 생존의 갈림길에 선 노동자,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쓰며 자화자찬하기에는 노동자는 지금 궁지에 몰려있다. 뭉쳐서 싸우지 않으면 생존 자체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노동자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는 지 건드려보고 있다.
우리는 이제는 더이상 당해서는 안된다. 더이상 침묵해서도 안된다.
32년전 KBS노동조합이 KBS의 위기 속에서 태어나 KBS를 구해냈듯이 이번에 노동자가 나서 싸우자!
KBS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의 본질인 참여와 연대의 정신으로 결코 멈추지 않는 투쟁 엔진을 돌릴 것이다!

 

 

 

 

2020. 5. 20.
무능경영 심판! 공영방송 사수!
KBS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

Posted by KBS 노동조합 KBS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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